김대중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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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타국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한 시민을 제거하려 한 미국 망명 생활까지 한대통령 김대중 선생님

선생님. 당신은 한 시민에게 죽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본인은 당신이 전달한 사회주의 정치 사상을 수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이 세균과 화학 약품을 사용한 암살과 납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인가요? 대통령의 직분은 시민인 본인을 보호하고 나라를 건강하게 하여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는데 당신은 분열과 대립을 조장 하였습니다. 정치 사상이 다르다 하여 사람이 납치 암살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무슨 민주화 인가요? 무슨 대화합인가요?

과거에도 그러하였듯 언젠가는 어느 지도자가 이룰 것입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희망 입니다.

아틀란타에서 대통령 김대중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을 받은 후에 본인은 노 등이 가담한 정보부 직원들에 의해 더욱 극악한 방법으로 수차 죽음을 눈앞에 보아야 하였다.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오늘도 변한 것은 없다. 2003.08.15. 서울에서

2003.11.11

간디는 만일 어떠한 투쟁을 계획했다가도 폭력을 쓰면 그 투쟁을 중지해버릴 정도로 철저한 비폭력주의자였습니다. 폭력은 결코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확고한 진리에 입각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평화민주당총재)

도청에 대통령 승인 해외에서 납치 암살은 대통령 승인 당연한 것 아닌가? 월요일, 8월 22, 2005

남북정상회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직후 북한 어린이를 돕고자하는 인류애를 품고 타인들이 참여하는 파리 - 베를린 2000km 자전거대행진 행사 (2000년 6월-7월)를 이용하여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을 납치 살인 하려 하였다 (서울에서 6.25가 다가오던 날... 유럽에서 6.23일 반 김정일 극우라 포장하면서 Brussels에서 용이하지 않자 Antwerp에서 납치 살해하려 한 것이다.)

중국인들까지 고용한 세균 테러 이후 떠났던 Brussels에 다시 돌아온 본인은.

2001년 6월 초 본인이 경제적 보상을 거부하고 단식투쟁을 풀고 Brussels을 떠나려 할 때 또다시 전염이 본인을 제거하려 함. 교회에서 사람을 죽여 없애려 시도한 것이다. - 이로부터 수일 후 "김대중 대통령은 6 ·15 남북공동선언 일 1주년을 맞아 청와대에서 각계와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온 이후에 탄압은 계속되었다.

"신명기 22: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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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수정한 날짜: 2007/09/11 화요일.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