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정치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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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워프와 부르셀에서 벌인 납치 살인 음모와 세균 테러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있었던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직후 유럽에서 인류애를 가지고 사람들이 참여하는 북한의 결핵어린이환자를 돕고자 행하는 불란서의 파리와 독일의 베를린간의 2000km 자전거대행진 행사를 이용하여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을 납치 살인하려 하였다.

6.25 전쟁일이 다가오던 때 반김정일 극우라 포장하면서 부르셀에서 용이하지 않자 안트워프에서 자전거 대행진 행사의 자전거 행렬이 지나가던 때를 틈타 납치 살해하려 한 것이다.



이들은 북한결핵어린이를 돕고자 하는 행사를 이용하여 배양홍이 이북놈이라하며 친김일성 좌익으로 죄명을 만들고 마약등으로 파괴하려던 본인을 다시 죽이려 한 것이다. 마약까지 사용한 음모가 실패하자 잠시 조용하였던, 오랜 세월 기다리던 직업적 인간 사냥꾼들의 죽음의 손길이 다시 다가온 것이었다.

납치 암살대상자를 철저히 극우로 포장하기: 김정일 암살을 언급하며 본인을 그럴 극우로 포장하려 하였다. 그런 말을 하던 중 최석봉은 본인이 모르는 이철승 이라는 이름을 들고 나오며 말을 더하였었다.



자전거대행진 행사가 있을 때 본인을 반 김정일 극우로 포장하던 조직의 전염은 본인에게 마약을 사용하며 친 김일성 좌익으로 포장한 80년대 말 배양홍진과장 등을 포함한 정치탄압조직의 한 인물과 공조 하였다. (이들 중에는 본인을 마약에 중독시켜놓고 길에서 본인이 마약에 중독된 것을 비웃던 자도 있었다.) 이 80년대 말에 활동하였던 정치탄압조직의 인물은 후일 공공기관의 website에서 자문위원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교통상부가 공식적으로까지 후원한 음모였던 것이다. 외교통상부 소속의 차관급 대사 최대화는 현지에서 납치 살인 음모에 관여한 집단에서 공식적으로 최고위층에 속하는 인물이다. 부르셀에서 차관급 대사를 거치면 외교통상부 장관이 된다고 사람들은 말하곤 하였다. 제2구간은 부르셀에서 암스테르담까지였다. 부르셀과 안트워프는 행사의 제2구간에 해당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한 시민을 김정일을 암살할 반김정일 극우라 떠들며 납치 살해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의 정치적 조건이 성숙되고 적절한 답방시기가 도래하나? 자국 시민을 친김정일 좌익 대신 김정일 암살을 언급하며 그럴 반김정일 극우로 몰아 납치 살해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남북 대화에서 무엇을 더 얻나?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자국 시민을 반김정일 극우로 몰아 납치 살해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에서 좌익으로 몰며 탄압하던 자국 시민을 극우로 다시 포장하여 납치 살해할 권리를 지니는가?

"햇볕으로 냉전의 빙벽을 녹이고 서로 화해 협력하는 가운데 남북이 다같이 공생하고 발전하면서 통일로 나아가자"김대중 대통령은 사상범 조작과 지역 갈등 조작이 국가 통일과 평화에 무슨 역할을 한다고 하였는가?

자신의 정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정부로 몰고 친김정일 좌익으로 몰던 자국 시민을 국가기밀을 유출하려는 자로 누명을 씨우려 대사관 내에서까지 음모하고 김정일 암살을 언급하며 반김정일 극우로 재포장하며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직후 해외에서 납치 살해하려 한 김대중 대통령의 현실감각은 본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대통령의 "심부름"을 한다는 국정원장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통일부 장관을 거친 DJ의 특별한 신임을 받던 임동원 현 세종재단 이사장이다.



납치 살해 음모가 좌절되자 부르셀로 돌아온 본인에게 납치 살인하려던 자들은 문씨를 통해서 즉시 용서를 구하였다. 6.25당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인민군을 용서한 목사도 있다며 본인에게 문씨는 용서를 구하였다. 얼마 후 문씨가 앉아 있던 그자리에 앉은 전염은 청송군사교도소를 언급하며 본인을 협박을 하였다. 청송군사교도소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은 살아 나와도 정상이 아니라며 자신이 군목시절 보았다며 협박의 강도를 더하였다.

이들 중 한명인 대사관 정강현 참사관은 무기류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자들, 국가의 기밀사항이라 간주될 것을 말하며 한반도에 무기류 공급을 하겠다는 자들의 접근으로 본인이 위험에 빠졌을 때도 무기류를 공급하겠다던 그를 미친놈이라 일축하며 본인을 납치 살해하려던 음모에 전념하였다. 이날 정강현 참사관은 본인을 대사관 밖으로 나가게 하기 급급하였다.

이후에도 이들은 본인을 수차에 걸쳐 납치 살해를 하려 하였다.

안트워프의 한 식당에서 칼잡이를 동원한 살해 시도가 한 예이다. 이날은 많은 자들이 살인 음모를 위장하기 위하여 동원되었다. 이날 살인하기 위하여 앞에 앉아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던 자는 자신은 큰 것만 한다던 인물이었다. 전기안전차단기에 문제가 있어 전깃불이 순간 순간 나가는 식당의 한 테이블에서 본인을 죽이려 때를 기다리던 특별히 훈련 받았다는 살인 전문가와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그리고 놀라오라던 자의 말.

전깃불이 순간 순간 나갈 때 본인의 등뒤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매우 체격이 큰 현지인들이 여럿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힘이 세다는, 혼자서 여러 사람 목의 일을 한다는, 한 제삼국 인이 있었다. 거의 익지 않은 고기를 씹지 않고 특이하게 삼키던 칼잡이는 눈앞에서 오늘 식당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되뇌며 음식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본인은 그자의 앞에 앉아, 담담히 그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행동을 기다렸다. 야당을 지지하면 반정부라 하는 이상한 자들과 한때 오랜 기간 야당의 정치지도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사상에 동의 하지 않으면 반정부로 정치범으로 몰아 살인까지 하려는, 음모를 업으로 삼는, 자들을 본인은 생각하였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돈만 주면 본인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죽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와 본인 눈앞에까지 와서 앉아 살인할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는 현실을 본인은 지켜보았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식당에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며 그들은 살인시도를 포기하였다.

그 현장을 위장하기 위하여 나타난 자들 중 한 명의 얼굴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그와 함께 그곳에 들어온 나머지 사람들을 자신의 동료들이라 하였다. 전염의 심부름꾼이며 본인이 전염의 거처에서 2001년 6월 전염의 약물에 정신을 잃었다 깨어날 때도 옆에 있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최근에도 이자는 전염의 주위에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동원 국정원장을 통하여 안트워프에서 준비한 또 다른 살인 심부름이었다. 놀고 가라는 자리가 죽을 자리였다. 본인이 열차를 타고 부르셀로 돌아가니 한밤이었다. 음모와 위협은 다른 장소에서도 지속 되었다.

저녁시간 대법원 앞 Place Poelaert 에 다아있는 rue Ernest Allard 에서, 대광장쪽을 바라보며 서있던 본인에게 갑자기 들이 닥친 그들은 정체 불명의 성인 4인으로 구성된 일가족과 김종길의 가족이었다. 이 정체 불명의 사인 가족 중 나이 많은 남자 성인은 본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였다. 서부 독일의 한 도시로 본인을 유인하기 위하여 나타난 용선이 Grand Place 근처 한 식당에서 한말과 일치하는 말이다. 김종길이 멀리까지 돌아보며 상황을 살핀 후 김종길의 부인은 납치시도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고 아이들에게 공놀이를 시키었고 아이들은 마치 기계처럼 이를 수행하였다. 아이들에서 볼 수 있는 즐거움 없는 긴장된 얼굴이었다.

김종길은 대성당에서 6.25 관련 기념행사를 하고 부르셀을 떠났다. 이 자리에는 최대화 대사도 있었다. 김종길이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한 말은 “청와대”였다. 본인의 질문과는 동떨어진 알 수 없는 그의 대답이었다. 또 다른 그 무엇의 시작이었다. 그가 떠나기 전 노길상 등이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말을 하며 큰 보상을 하겠다는 것을 김우철 Popeye등을 통하여 말하였다.

전염은 김대중 대통령이 조 단위의 대북 송금하였다 말하며 본인을 해하기 위한 음모를 준비하였다. 본인은 전염의 음모를 정강현을 통하여 불가능하게 하자 그들은 정강현을 통하여 다시 경제적 보상을 하겠다 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그들의 경제적 보상을 정이 제안하는 순간 즉시 거부 하였다. 더러운 돈으로 얼마나 오래 이 사회가 파괴되었는가를 생각하고 막아야 할 자들이 하는 또 다른 종류의 파괴행위였다.

본인은 이후에도 경제적 보상 운운하는 돈의 음모를 보고 겪어야 하였다.

이들은 수차의 납치 살해 음모 시도 후 세균테러까지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균 테러 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들란타로 떠났다.

미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되어있었고 서울로 갈수도 없기에 부르셀에서 잠시 머무르기 위하여 본인을 죽이려 기다리는 자들이 있는 부르셀로 다시 향하였다. 2001년 5월 말 이였다.

부르셀에 도착한 후 전염과 통화를 하고 그를 만났다. 그들의 말처럼 본인에게는 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때가 많았다. 이날도 그러한 날이었다.

2001년 6월 초 부르셀에 있는 동안 본인은 전염이나 노길상등 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들 대부분을 만나지 않았다.

본인이 본인을 죽이려는 자들의 코 앞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하고 나서 수일 후 전염은 한 사람을 통하여 경제적 보상을 제안하였다. 그 보상을 말하던 자리는 전염이 본인을 2000년 6월말 경 안트워프에서 납치 살해 음모가 실패한 후 부르셀로 돌아온 본인에게 청송군사교도소를 언급하며 위협을 그 자리였다. 본인은 그 자리에서 그들의 경제적 보상 제안을 거절하였다.

단식투쟁을 접고 2001년 6월 12일 14:40에 부르셀을 떠나기 위한 비행기표를 Travel Shop Brussels에서 503.27 Euro에 구입하였다. 전염은 떠나려 준비하던 본인을 자신의 부인까지 동원하여 없애려는 음모를 행하였던 것이다. 약물로 본인의 의식이 희미하여 질 때 미소를 띤 전염은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며 본인의 의식 정도를 시험하였다. 전염은 본인이 정신을 잃기 전 그곳에 여러 명이 올 것이라 하였고 후에 본인이 그들이 누구냐 질문하였지만 그는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하였다. 이날 저녁 약물에 정신을 잃은 본인은 그곳에 잠자리를 청하러 온 사람들의 존재로 우연히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전염이 방문객들의 등장에 계획을 포기한 것이었다.



2000년에 안트워프의 한 식당에서 본인을 살해하려던 때 그들의 음모를 은폐하기 위하여 동원되었던 자들 중에 본인과 안면이 있던, 전염과 김우철과 자주 함께하던, 그자가 다시 나타났다. 본인이 약물에서 깨어날 때의 일이다.

2001년 6월 초 본인이 또 다른 그들의 경제적 보상을 거부하고 단식투쟁을 풀고 부르셀을 떠나려 할 때 또다시 전염이 본인을 제거하려 하였던 것이다. - 이로부터 수일 후 김대중 대통령은 6 •15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청와대에서 각계와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었다.

간디는 만일 어떠한 투쟁을 계획했다가도 폭력을 쓰면 그 투쟁을 중지해버릴 정도로 철저한 비폭력주의자였습니다. 폭력은 결코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확고한 진리에 입각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평화민주당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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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수정한 날짜: 2007/09/11 화요일. 서울